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全百勝)!
미생물학의 황금시기의 시작, 코호의 연구실
코호의 연구실은 파스퇴르의 연구실과 그 분위기가 매우 달랐습니다. 코호의 연구실은 독일에서 이름을 남긴 많은 학자들은 물론 유럽의 여러 나라, 심지어는 일본에서까지 내로라 하는 학자들이 많이 거쳐간 곳입니다. 심지어 그의 조수(연구원? 제자?)가 코호 보다도 먼저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에밀 폰 베링은 1901년 첫 번째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입니다. 코호는 결핵의 연구 공로로 1905년에, 그의 또 다른 연구원들인 메치니코프와 에헤를리히가 1908년에 받는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Robert Heinrich Hermann Koch (1843-1910)
사진 출처: https://www.qphradio.org/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8413:robert-heinrich-hermann-koch&catid=277&Itemid=421
코호의 시대에는 결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었습니다. 그의 공로로 결핵의 기초적인 병리학적 지식 및 조기 진단 등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항생제 등이 발견될 때까지 무수한 인류의 생명을 앗아간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 대까지 유명한 사람들이 요절한 가장 큰 이유가 결핵이었습니다. 항생제 덕택으로 한동안 사라졌던 질병이 최근에 다시 우리 주변에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합니다. 결핵이 지금은 무서운 병은 아니지만, 아직도 조심하여야 하는 것은 재발할 경우에는 치료가 매우 힘든 질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코호의 시대에 결핵 이외에도 수많은 어린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이 있었는데, 디프테리아라는 전염병입니다. 전염병이 돌 때면 10% 정도의 사망률을 보이는 매우 무서운 질병입니다. 열 명 중의 한 명이 죽는다고 보시면 안 됩니다. 전염병이 돌면 수만 명이 감염되는 것이고, 그 중의 10%라고 하면 수천 명이 죽는 것입니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지요.
사진 출처: by National Cancer Institue on Unsplash
디프테리아를 일으키는 병균이 상기도에 자리잡고 자라면서 독소를 뿜어내는데, 이 독소가 혈액을 타고 전신으로 퍼집니다. 그리고 기도를 막는 얇은 막이 생겨 호흡이 매우 힘들어지는 아주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DPT(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라는 복합백신 덕택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질병입니다만, 혈액으로 독소가 퍼지기 때문에 파스퇴르의 경우에서처럼 백신의 효과를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더군다나 병원균에 대하여 백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소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파스퇴르의 경우보다 몇 배나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 질병이 독소에 의한다는 사실도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독소를 어느 정도 정제하여 그 독성을 약화시킨 뒤 동물에게 주사하면 항체가 생기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량의 백신을 개발하기 위하여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한 번에 많은 양의 혈청을 얻기에는 대형동물이 용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와서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의 혈청에는 우리 몸에서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들이 다량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초기의 백신 개발을 통하여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면역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게 됩니다. 파스퇴르와 코호의 연구실에 모여있던 많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하여 이제 우리는 전염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에 대하여 방어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Photo by Trnava University on Unsplash
여기에서 이야기를 잠시 코호의 연구실의 다른 업적을 소개하겠습니다. 전염병에 감염된 환자로부터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분리되었고, 연구실에서는 이들 미생물들을 배양하면서 병리학적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환자에게서 발견되는 미생물은 한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특정 미생물이 이 질병을 일으켰다고 결론 지을 수 있을까요. 코호의 가설(Koch’s postulates)이라고 부르지만, 코호의 가정이란 말도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제가 번역을 했더라면 “코호 연구실의 기준”이라고 했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여기 우리가 매우 수상한 병균을 하나 찾았다고 합시다. 이 병균이 정말로 이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었다면, 이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생쥐를 예로 설명하겠습니다.
이 미생물이 특정의 질병을 일으켜 생쥐를 죽게 하였다면, 죽은 생쥐에서 그 미생물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하지만, 건강한 개체에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요구조건입니다. 죽은 생쥐에서 분리한 병원균이 하나가 아닐 수 있으므로 각각의 미생물을 따로따로 배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두 번째 조건이며, 그렇게 준비된 미생물을 다시 건강한 생쥐에 주사하였을 때 동일한 증상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세 번째 조건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할까요? 아닙니다. 최종 판단을 위하여 세 번째 조건을 충족시킨 생쥐에서 다시 이 미생물이 분리될 수 있다면, 그 미생물이 바로 그 질병의 원인균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 네 번째 조건입니다. 흔히들 네 번째 조건을 간과하게 되지요. 물론 이 기준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당시로서는 이러한 기준 덕택에 수 많은 전염병의 원인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Photo by CDC on Unsplash
코호의 실험실에서 만든 이 기준에 의하여 수많은 전염병의 원인균들이 한꺼번에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1876년 탄저병균의 발견으로 시작된 이 시기를 “미생물학의 황금시기; The Golden Age of Bacteriology”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들 병원균에 대한 백신 개발도 함께 발전하게 되겠지요. 요즈음 너무 딱딱한 이야기만 해드린 것 같아서 다음에는 1925년 알래스카에서 디프테리아 백신의 수송과 관련된 옛날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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